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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개]어쩔 수가 없다』 인간성의 붕괴를 응시하는 잔혹한 서사

by 만물안박사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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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 없다

2025년 하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17년간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작품이다. 실직과 경쟁이라는 현대인의 일상을 바탕으로, 도덕과 생존의 충돌이라는 냉혹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등 국내 최정상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심리적 충격을 선사한다.

스토리: 경쟁 사회가 만든 괴물의 탄생

영화는 유만수의 해고 통보 장면으로 시작된다. 회의실, 책상 위에 올려진 정리해고 서류, 묵묵한 상사들. 한순간에 생계와 자존심을 잃은 유만수는 ‘가장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그는 면접을 보지만, 나이와 경력에서 밀려 번번이 탈락하고, 경쟁자 명단을 보게 되며 생각한다. “저들만 사라지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그는 행동에 나선다. 경쟁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고, 접근하며,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처음에는 사고처럼 위장하지만 점점 더 대담해지고, 광기는 통제 불능으로 번진다. 유만수는 더는 가족과 대화하지 못하고,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할 괴물이 되어간다. 그의 살인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생존의 허가증이 되어버린다.

감독의 시선: 박찬욱이 조명하는 인간의 경계

박찬욱 감독은 그간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에서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번 작품 『어쩔 수가 없다』는 단연코 그의 연출 인생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가장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이자,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원작 『The Ax』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로, 세계화 이후 고용불안과 중년 남성의 실존적 위기를 예리하게 짚어낸 작품이다. 박 감독은 이 원작을 한국 사회에 맞게 각색하며, 보다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영화는 경제적 붕괴 속 인간의 심리를 냉철하게 그려내며,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 구조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낸다.

출연진과 캐릭터 심층 분석

이병헌 – 유만수
주인공 유만수는 '흔한 가장'이었다. 제지회사에서 25년을 묵묵히 일해온 그는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통보로 해고된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사회의 성실한 노동자로서 그는 자존심을 잃는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그를 점차 극단으로 내몬다. 이병헌은 유만수의 점진적인 변화, 죄책감과 광기의 공존을 정교하게 구현해 내며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생생하게 그린다.
손예진 – 미리
미리는 유만수의 아내이자 현실의 안식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가정의 안정을 지키려 애쓰며, 남편의 몰락과 변화에 점차 감정적으로 고립된다. 손예진은 내면의 분열과 외면의 평정을 오가는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안긴다.
박희순 – 최선출
회사의 반장이자 냉혹한 조직의 상징. 그는 유만수의 해고를 직접 단행하며, 시스템의 논리를 대변한다. 박희순은 최소한의 대사 속에서도 무게감 있는 연기로 자본의 비정함을 대변하는 역할을 묵직하게 수행한다.
이성민 – 구범모
같은 업계의 해고자이자 유만수의 ‘거울’ 같은 존재. 그 역시 재취업을 위해 사투를 벌이며,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성민은 상실과 절망의 밑바닥을 리얼하게 연기하며 유만수와 교차되는 남성의 붕괴 과정을 보여준다.
염혜란 – 아라
구범모의 아내로서 경제적 어려움과 남편의 좌절을 함께 감내한다. 현실에 밀리지 않으려는 여성의 단단함과 무너지는 감정 사이에서 염혜란은 진정성 넘치는 생활 연기를 펼친다.
차승원 – 고시조
극 중 유일하게 '여유 있는' 경쟁자로, 유만수에게는 비교 대상이자 분노의 촉매제다. 차승원은 유쾌한 얼굴 뒤에 숨겨진 냉정함을 능청스럽게 표현해 내며 극의 긴장감을 조율한다.
유연석 – 오진호
미리가 일하는 병원의 의사로, 유만수의 불안을 자극하는 존재. 유연석은 절제된 표현력으로 도덕과 감정의 경계에 선 인물을 설득력 있게 소화한다.

결론: 우리 모두가 유만수가 될 수 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불쾌할 만큼 현실적인 영화다. 아름다운 음악도 없고, 영웅도 없다. 대신, 그곳에는 절박한 가장, 침묵하는 가족, 무심한 사회만이 존재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 이야기 속에 윤리와 생존, 체제와 개인의 경계에 선 인간의 모습을 정밀하게 담아낸다.
관객은 유만수의 선택을 비난하면서도, 자신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민다. 그리고 묻는다. “정말로 어쩔 수 없었습니까?”
이병헌의 압도적인 연기, 손예진의 몰입도 높은 감정선,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철학적 연출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어쩔 수가 없다』는 올해 가장 뜨겁고 불편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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